언제부터일까, 그것을 직업으로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런 생각을 하면 항상 떠오르는 기억은, 중학교시절의 국어선생님이
당신은 글은 많이 읽었지만 글을 많이 써보지 않았기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한다고 했던 것이 항상 생각난다.
다독, 다작, 다상량
이라 던가,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이...
자신이 글을 잘 못 쓴다고 생각하신 탓일까, 그 선생님은 작문을 강조하면서 가끔 숙제로 글을 써오게 하셨다.
수필식의 글을 쓰게 재목이나 주제도 정해주셨던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도 같고...
첫번째는 확실히 그랬던 것 같다.
3학년을 시작한 기분 정도?
나는 익숙한 2학년의 교실에서 새롭게 시작될 3학년의 생활을 두렵기도 기대하기도 하다는 식으로 글을 썼던 것 같다.
좀 더 큰 내가 그곳에 존재한다는 둥, 하는 식의....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무튼 그런 식의 글을 쓰고 선생님은 잘 된 글을 직접 나와서 읽게 하셨다.
그러다가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수필이라는 것은 경험에서 나온 것을 쓰는 것이라는 식의 말투로
몇 년 전 자신의 제자 중 한 명이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서 여느 부자들처럼 정감있게 지냈다는 글을 썼었는데
그 글 솜씨가 썩 좋아서 좋게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그 학생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그 글이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좋은 수필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돌아서 보니 그 생각이 잘 못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선생님이 그 학생에게 뭐라고 말을 했었던지 어떤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때 당시의 내 감정은 선생님이 너무하셨다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목욕탕에 갔다는 이야기는 현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글이라는 것은 현실만을 쓰지는 않는다.
나는 수필이라도 계시지 않는 아버지와 목쵹탕에서 정답게 등을 미는 것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그이 상상이었다.
수필은 상상으로 쓰는 것은 아니다.
당시의 나은 그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자면 그 글은 아버지가 없는 그 만이 쓸 수 있는 바람의 글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이 아닌 이상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다정한 대화는 불가능 하다.
하지만 글이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그 이니까 가능한 수필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생님은 글을 잘 쓰지 못하는 게 아닐까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워졌다.
글을 쓰는 것을 더 의식적으로 생각해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 좋아서,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좋은 기회가 있다면 말이나 글만으로 끝나지 않고
행동으로 꿈을 이루고 싶다.
이글루스 가든 - 매일 매일 한 편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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